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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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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Le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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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羊補牢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비슷한 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망양보뢰는 중국 전국시대의 초나라(楚) [.tag.p]##양왕(襄王, 재위 B.C. 298~B.C. 263)##footnote:[공경왕(公頃王)을 말함.]이 [.tag.p]##장신(莊辛)##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강국인 진나라(秦)의 침략을 받아 영토를 잃은 뒤 다시 장신을 불러들이자, 장신이 왕을 깨우치기 위해 인용한 속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어느 날 장신이 양왕에게 말했습니다. [role=dialog] [verse] 장신: 임금의 왼쪽은 주후(州侯)가, 오른쪽은 하후(夏侯)가, 그리고 수레 뒤에는 언릉군(鄢陵君)과 수릉군(壽陵君)이 따르면서 오로지 음란과 사치만 일삼으며 국정을 돌보지 않으니 초나라는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양왕: 선생, 노망들었소? 장차 우리 초나라에 재앙이 일어난단 말이오? 장신: 신은 틀림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지, 감히 나라에 재앙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께서 기어이 네 신하에 대한 총애를 줄이지 않으신다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조나라(趙)로 피해 그곳에 머무르며 관망하고자 합니다. 장신이 초나라를 떠나 조나라로 가서 머문 지 5개월이 지나 과연 진나라가 초나라의 언(鄢)‧영(郢)‧무(巫)‧상채(上蔡)‧진(陳) 땅을 침략해 빼앗자 양왕은 눈물을 머금고 성양(城陽)으로 도망가 숨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빨리 가서 조나라에 있는 장신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장신이 초나라로 돌아오자 양왕이 말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양왕: 과인이 선생의 말을 듣지 않다가 지금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장신: 제가 듣건대 속담에 ‘토끼를 본 뒤에 사냥개를 찾아도 늦은 것이 아니고, 양을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쳐도[亡羊補牢] 늦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듣건대 옛날 은나라(殷)의 [.tag.p]##탕(湯) 임금##과 주나라(周)의 [.tag.p]##무왕(武王)##은 100리의 좁은 땅을 가지고도 번창하였지만, 하나라(夏)의 [.tag.p]##걸(桀) 임금##이나 은나라의 [.tag.p]##주(紂) 임금##은 천하를 가지고도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초나라가 비록 작다고는 하나 긴 데를 잘라 짧은 데에 이어붙이면 오히려 수천 리는 될 것이니, 어찌 100리뿐인 좁은 땅이라 하겠습니까? 장신은 이어서 몇 가지 예시를 든 다음,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role=dialog] [verse] “왼쪽의 주후, 오른쪽의 하후, 그리고 수레 뒤를 따르는 언릉군과 수릉군은 국가의 봉록을 먹으며 방부(方府, 초나라의 창고)의 재화를 싣고서 대왕과 함께 운몽(雲夢, 초왕의 사냥터)을 내달리면서도 천하 국가의 일은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후(穰侯)가 진나라 왕의 명을 받고 면새(黽塞, 초나라의 국경 요새)의 안을 진나라 군대로 채우고 자신들을 면새 밖으로 몰아낼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왕이 이 말을 듣고는 안색이 변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장신에게 집규(執珪)의 작위를 제수하고 양릉군(陽陵君)을 삼았으며, 그에게 회북(淮北) 땅을 주었습니다. 망양보뢰는 양을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쳐도 늦지 않다는 긍정적인 의미였고 중국에서는 여전히 그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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